▣ 개요

 

 

이름

 김국진(金國鎭)

출생

 1965년 2월 6일, 강원도 인제군

신체 조건

 168cm, 60kg, A형

학력

 인제남초등학교
 반포중학교
 인창고등학교
 경기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가족

 3형제 중 셋째

데뷔

 1991년 제1회 KBS 대학개그제

종교

 가톨릭(세례명 : 가브리엘)

소속

 라인엔터테인먼트

 

 

1990년대 중후반 한국 연예계 최고 정점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코미디언
유재석 전에는 그가 있었다
90년대 후반 국민 MC를 넘어 국민 연예인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강원도 인제군에서 출생했다. 데뷔는 1991년 KBS 공채 개그맨 7기.

1990년대 초반 방송가를 떠들썩하게 한 일명 '감자골 사태' 이후에는 제명당한 상태.

 

1990년대 중반 ~ 후반 그의 이름을 내건 빵이 나올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유재석 인기의 훨씬 이상이다."라는 말 한마디로 정리되는 폭발적 인기였다고 보면 된다.

 

동기인 김용만과 콤비를 이루어 승승장구하다 사업 실패, 골프 프로 테스트 탈락과 배우 이윤성과의 이혼 후 한동안 슬럼프를 겪었다.

 

2007년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와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이후 슬럼프를 탈출했으며, 그 이후 '남자의 자격'과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등에 출연도 시작하면서 제 3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나이는 1965년생인 김국진이 1972년생인 유재석보다 많지만, 어린 나이에 데뷔한 유재석과 동기다. 유재석은 당시 대학에 입학한 만 19세에 공채 개그맨 시험에 합격해서, 최연소 공채 데뷔 기록에 올랐고, 김국진은 군 복무를 마치고 4년제 대학교까지 졸업한 상태에서 합격했기 때문에 나이 차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

 

 

▣ 감자골 사태

 

김국진의 흥행과 몰락은 임팩트 때문인지 이 뒤의 일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지만, 김국진의 전성기와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이 시기 데뷔한 KBS 개그콘테스트 시대 멤버들은, 잘 알고 있듯 SBS의 코미디언 빼내가기를 통해 빨리 기회를 잡았다. 초기에는 기존의 KBS식 콩트와 맞지 않았지만 선배들의 이적을 통해 완전히 분위기를 일신한 KBS 희극인실에서 당시 '감자골'이라는 개그팀을 김용만, 김수용, 박수홍 등과 함께 했는데 이것이 성공하면서 KBS의 모든 예능 프로에는 이들이 출연했을 정도로 히트도 쳤고 KBS도 팍팍 밀어줬다. 1992년 K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신인상을 탄 것이 그 증거.

 

문제는 감자골의 인기로 인한 혹사로 인해 스케줄이 너무 힘들어서 조정을 요구했으나 KBS는 전속 계약을 이유로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김용만이 무리한 스케줄에 탈이 나서 드러눕고 만다. 이에 화가 난 김국진이 1993년 1월,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선언하고 박수홍, 김수용이 동참, 나머지 둘도 결국 하차를 하게 된다.

 

평소 신인 주제에 벼락스타가 된 이들을 아니꼽게 보던 코미디계 선배들은 프로그램을 갑자기 그만 둔 것은 프로에게 걸맞지 않은 모습이라며 성토를 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방송 3사 코미디언 협회에서 제명당한다. KBS 희극인실의 최고참인 임하룡이 "얘네들이 어린아이들도 아니고 군대 갔다 온 성인인데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방송사 측에 항변한 것일텐데 왜 우리 동료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주지 못할 망정 싹도 안 자란 아이들을 영구제명시키냐."면서 옹호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흠좀무.

 

결국 감자골은 1993년 2월 당시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였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고별 인사를 하고 미국행을 하기로 했는데 녹화가 시작되기 직전 "프로그램을 열 개씩 하던 감자골이 갑자기 그만 둔 것은 MBC로 이적하기 위함이었다!"라면서 임하룡을 제외한 방송 3사 코미디언들 모두가 MBC로 쳐들어와서 녹화를 방해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난동을 피우는 통에 김국진은 스태프들을 따라서 개구멍으로 피신을 갔다고 한다. 이 사건 후, 감자골은 "자신들은 다른 곳으로 이적하는 것이 아니라 코미디언으로서 은퇴하고 이민가는 것이다."라고 설득해서 겨우 시청자들에게 고별 방송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국행 직전에 박수홍은 입대 영장이 나왔고 김수용은 미국 비자가 나오질 않아서 결국 감자골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이후 김용만과 미국에서 1년동안 지내면서 이것저것 한 모양. 이현도의 증언에 따르면 나이트 클럽까지 인수했었다고 한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큰 규모는 아니고 쌀국수집 옆 지하의 작은 규모였다라고.

 

 

▣ 전성기

 

1995년, 미국에서 1년만에 귀국해 MBC에 자리잡은 김국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대한민국 연예인 역사상 최고의 인기였다.

 

 

 

 

전성기에는 '테마게임'과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에 주로 출연하며 "어라~?", "여보세요~", "사랑해요~", "밤 새지 마란 말이야!", "나 소화 다 됐어요~" 등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유행어를 양산했고 코미디, MC, CF, 연기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약했다. 전지현, 송혜교 등 지금 잘 나가는 스타들도 당시엔 김국진의 CF에 덤으로 나올 정도였다. 이때 당시의 인기는 단연 원탑이여서 이병헌과 H.O.T.를 기다리게 할 정도였고 단독 주연의 미니시리즈(MBC '반달곰 내사랑')를 찍을 정도였다. 예나 지금이나 탁월한 개그 감각 같은 건 별로 없다고 평가 받지만 도시 서민적인 외모와 왜소한 체격, 약간 어눌하면서도 친근한 말투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것이 히트의 비결로 추측된다.

 

 

 

 

심지어 국찌니빵이라는 본인의 이름과 본인 캐릭터 띠부띠부씰을 넣은 빵이 대히트를 기록해서 도산위기였던 기업을 살려내기도 했다. 당시 월 평균 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이게 어느 정도 성적인지 감이 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참고로 말하자면 2014년 말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허니버터칩도 3개월만에야 매출 50억을 기록할 수 있었다.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하면 얼마나 초대박이 났는지 짐작이 갈만하다. 연예인의 이름과 얼굴을 건 상품이 최초로 나온 사례이자 스타 마케팅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사례로 마케팅 전공수업시간에도 언급될 정도라고 한다. 당시 국찐이 빵을 먹었던 사람들의 추억담을 들어보면, 스티커는 국찐이의 세계여행 등 몇가지 테마를 가지고 만들어졌고 빵 종류는 여러가지였는데 가격은 500원으로 동일했고 은근히 양도 괜찮은 편이었다고 한다. 핑클빵도 국찌니빵 같은 히트사례가 없었다면 출시되지 않았을 것이다.

 

김국진을 제외하고 전국민적 인기를 누린 개그맨을 말하라면 유재석이 첫손에 꼽히는 일이 많기에 인터넷 상에서는 '전성기 김국진 vs 현재 유재석'이라는 떡밥이 항상 돌고 있는데 장기적인 커리어가 아닌 단기적인 최정점 포스를 따지자면 김국진이 우위에 있다는 것이 중론.

전성기가 10년을 넘겨 현재 진행중이지만 그 사이에 절반 정도의 기간을 강호동이라는 강력한 대항마와 공존했었던 유재석과 달리 전성기의 김국진은 개그계 라이벌이 존재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가수나 배우까지 통틀어 인지도와 인기로 그를 넘볼 대상이 없던, 그야말로 연예계 혼자 1등이라 할만한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다. 라디오 스타에 의하면 모 방송국 PD들이 그를 출연시키기 위해 그의 집 앞에서 밤샘을 할 정도였다고한다. 2014년 방영된 라디오 스타 내가 제일 잘나가 특집에서 일본계인 강남이 김국진이 뭐하는 사람인지 묻자 김구라가 한국의 시무라 켄이라 소개했다. 당시 김국진의 인기를 한 줄로 줄인 말이 바로 대한민국 방송계를 움직이는 네 인물 중 한 명. 게다가 코메디 30년 최고의 코메디언에 선정되었는데, 2위가 구봉서. 또한 광복 50년 최고 연예인으로 선정되었는데, 참고로 2위가 대중가요의 황제 조용필. 즉 김국진은 개그맨이 연예계 최고 스타가 된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미취학 아동부터 노인까지 모든 세대의 장벽을 초월하여 선호되고, 그 거대한 인기 위에 여유롭게 서 있던 최고의 톱스타였다.

 

 

 

 

이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90년대 가요계 끝판왕 서태지와 한국 영화계 원조 흥행보증수표 한석규, 당시 트렌디 드라마를 휩쓰며 최진실의 뒤를 이어 TV 드라마계의 아이콘이었던 김희선 등, 다른 연예인들이 각 부문에서 10~20%대 지지율을 보였던 반면, 김국진은 개그맨 부문에서 55%라는, 말 그대로 넘사벽의 인기를 구가했다. 게임잡지 V챔프에서는 "김국진이 돈 벌려고 마음 제대로 먹고 뛰었다면 지금쯤 말 그대로 걸어다니는 대기업이 될 수도 있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딱히 연기력이 뛰어나지 않았음에도 시트콤 뿐만 아니라 정극드라마에도 출연했었는데, 이는 김국진을 좋아하는 시청자폭이 너무나 넓었기에 대박드라마가 안 되더라도 최소한 망하지 않을 정도의 시청률은 보장될 거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기대와 달리 그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정극 드라마 시청률은 망했었지만..

 

 

▣ 몰락

 

90년대 후반부터 김국진은 MBC의 미니시리즈 <반달곰 내 사랑>에서 주인공인 체육교사 역을 맡은 것을 계기로 코미디 활동보다는 연기자로 활동하였다. 실제로 김국진은 정극과 희극의 경계에 있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고 테마게임에 출연했을때도 당시 출연하던 개그맨 중 독보적인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김국진이 출연했던 꽁트의 대다수도 극적인 요소가 두드러진 것이 상당히 많았다. 또한 김국진은 자신의 '혀짧은 국진이' 캐릭터에도 별로 애착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사족으로, 김국진은 <반달곰 내 사랑>에 앞서 2000년 초 방영될 뻔한 SBS 수목 미니시리즈 신화를 통해 연속극 데뷔를 할 예정이었는데 또다른 남자 주인공 역에는 김승우, 여주인공은 이승연이 낙점되었으나 이승연이 당시 출연 중이었던 KBS 2TV 주말극 <사랑하세요?> 스케줄과 겹쳐 캐스팅 제의를 포기하자 제작진은 영화 거짓말로 스타덤에 올린 모델 출신 김태연을 대타로 올리는 한편 2000년 하반기로 첫 방송일을 미뤘지만 이번에는 제작진이 김국진과 갈등을 빚어 편성이 무산되는 수모를 겪었고 뒷날 2001년 하반기로 변경되면서 김국진 자리에는 KBS 슈퍼탤런트 출신 김태우, 김승우 자리에는 박정철, 김태연 자리에는 김지수가 대타로 들어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신화>는 첫 회(2001년 9월 26일)부터 2001년 10월 11일까지 <반달곰 내사랑>과 경쟁한 바 있었다.

이와 함께, <반달곰 내사랑>은 당초 유오성 차승원 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영화 촬영 등의 이유로 고사하자 김국진이 대타로 들어갔으며 삼각관계에 지나치게 의존한 탓인지 주인공들의 주변 이야기가 없었던 데 이어 너무 잔잔하게 진행됐다는 혹평을 받았고 결국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쳤으며 역설적이게도 <반달곰 내사랑> 출연진이었던 이세은, 박정수 등은 차승원이 출연한 드라마인 KBS 2TV 보디가드 조연이었는데 이 드라마 출연진 중의 한 명인 이원종은 김국진의 대학 1년 후배다.
결국, 김국진은 <반달곰 내사랑>의 실패 후 2006년 MBC <진짜진짜 좋아해>로 연속극 출연을 간신히 할 수 있었다.

 

아무튼, 김국진은 최전성기이던 1999년 갑자기 방송을 그만두고 1년 가까이 휴식을 취했다. 이후 김국진은 휴식 기간 중 접한 골프에 빠져서 프로골퍼에 도전했지만 프로 등단 시험마다 탈락하면서 막대한 돈을 잃었다. 이후 2000년 MBC 시트콤 <연인들>에 출연, 같이 호흡을 맞춘 이윤성과 2002년 10월 17일 결혼하였다. 그러나 2003년 7월부터 돌연 별거를 시작하다가, 2004년 3월 15일 이혼하였고 이윤성 측에 막대한 위자료까지 지불하게 된다. 거기다 이 때 시도한 골프의류 사업과 주식투자 모두 망했다고 한다.

 

또한 워낙에 사람이 좋아서 후배든 친구든 돈 빌려달라는 사람에겐 무안할 정도로 퍼다주다가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물론 김국진에게 돈을 빌려갔던 사람들 중 김국진에게 돈을 제대로 갚은 사람은 몇 없다고 한다. 거기다 절친했던 인물에게 사기도 당했다고 했다.

 

결국 김국진은 세상에 회의를 느끼고 대인기피증이 와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피하고 친구도 만나지 않는 은둔생활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쯤되면 자살을 안 한 것이 용할 정도. 본인은 이 경험에 대해 "난 빵을 맞았다"고 표현했다. 유행어가 될 조짐이 있었으나 너무 처절해서 개그로 인식되지 않은 탓인지 금방 잊혀졌다.

 

인생 망가지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김국진의 전성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체 뭘 하면 그 위치에서 이렇게까지 말아먹을 수 있는가에 경악하게 된다. 그걸 여실히 보여주는 게 방송 복귀 초기의 모습인데, 옛날에도 현재에도 호리호리한 편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이지 앙상하게 말라있었다. 그래도 이 기간중에 범죄를 저질러 출연금지 연예인이 되어, 재기의 기회까지 박탈당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도박질하는 유명 연예인보다 굶주린 무명 연예인이 낫다는 걸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명랑히어로 비장의 카드로서 등장해서 그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인터뷰에서 밝히길 요즘은 뭐든지 다 재밌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듯.

 

 

▣ 재기

 

이렇게 우울하게 살고있던 김국진이 안쓰러웠던 친구들이 다시 방송 복귀를 권유해서 드디어 복귀한다. 여담으로 복귀 당시에 대형 프로그램 전에 여행 프로그램 등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전의 김국진에 비하면 엄청나게 마르고 아파보여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원래 마르기는 했으나, 정말 고생했다는게 느껴질 만큼 마른 것.

 

2005년 토요일 밤 6-8시대 버라이어티 꼭지에서 고전하고 있던 MBC의 회심의 카드로 제작된 토요일이라는 버라이어티로 복귀를 선언하고, 당시 김용만, 박경림 등과 중국에서 중국어를 배우며 여행하는 "커이 커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간만에 주말 버라이어티에 출연했다. MBC가 야심차게 준비한 특대형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기획이 된 프로인데다가, 유학 후 복귀하는 박경림과 함께 다시 전성기를 맞이 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참신한 기획보다는, 유명 MC의 복귀라는 회제성에만 치우친 분위기였고,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코너가 폐지되고 프로그램명도 토요일에서 강력추천 토요일로 바뀌게 된다. 이후 그는 다시 방송활동이 스톱된다.

 

무릎팍 도사 출연을 시작으로 라디오 스타를 맡게 되는데, 처음에는 라디오 스타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그 시기에도 매우 센 방송이었기에 과거와는 너무나 다른 방송 트렌드를 따라가질 못하면서 오는 무리수로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김구라의 멱살을 잡거나 대본을 집어던지거나 했던 것도 이 시기 쯤.

 

이렇듯 어려움도 많았지만 회가 갈수록 조금씩 캐릭터를 잡아가기 시작하면서 레전드 짤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등 자신감을 얻어 라디오스타 MC로써 확실히 자리 잡기 시작한다. 특히 김구라가 없던 비상(?)체제에서는 조용 조용하게 직설적인 화법으로 게스트를 당황하게 만들 정도가 되었고 라스에서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타 방송의 다른 프로그램도 활약을 하기 시작하는 등 부활의 조짐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남자의 자격'에서도 나름의 영역을 보여주며 활약을 선보였고 공중파 뿐 아니라 종편에서도 MC를 하는 등 단순한 재기를 넘어서 제 8의 전성기가 왔다는 말이 돌 정도로 부활에 성공했다. 라디오스타가 특정 매니아층 형성에 성공하면서 소위 알까기 프로그램인 '명랑히어로', '음악여행 라라라', '위기탈출 넘버원' 등에도 출연했다.

 

'2008 MBC 연예대상'에서 김용만과 같이 시상을 하러 나와서 아직 둘의 콤비는 죽지 않았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2008년 중반기에는 라스에서 나이를 잊은 골반춤(일명 '예~' 춤)에 큰 스퍼트를 받았으며, 모두들 그를 보면서 귀엽다는 평가를 했다. 이후에도 가끔씩 선보이면 좋은 반응을 얻는다. 특히 다른 쪽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는데 카라의 2집 미니앨범 타이틀곡인 Pretty Girl의 안무를 보면 '예~' 춤을 응용한 비슷한 동작이 있는데, 카라가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김국진 선배님의 춤을 응용한 거라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라디오스타 추신수편과 이대호편에서는 스윙으로 촛불끄기에 도전했다가 초를 날려버리는 레전드 영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2015년 설특집 파일럿 방송이였던 '불타는 청춘'에 출연. 정규 편성 후에도 고정 출연하며 사실상 프로그램의 흐름을 조율하는 MC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역시 같은 고정 출연자인 강수지와는 '치와와 커플'이라는 별칭까지 얻을 만큼 실제인지 설정인지를 헷갈리게하는 케미스트리로 인기몰이중이다.

 

강수지와의 케미 덕분에 '2015 SBS 연예대상'에서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하였다. 방송본을 보면 알겠지만 강수지의 매우 적극적인 수상소감에 당황하며 얼버무리는 모습이 백미. 앞선 발언도 한참 쩔쩔매다가 말한 거였다.(시청자들은 역대급 수상소감이라고 얼른 결혼하라고 난리)

 

물론 강수지와의 케미스트리가 전부가 아니라 불타는 청춘 초창기와 현재의 김국진 모습을 비교해보면 여러모로 사람이 많이 밝아지고 적극적이 되었음을 볼 수 있다.

 

결국 2016년 8월 3일, 강수지와의 연애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후 정정보도에 의하면 결혼은 아직이지만 좋은 감정을 갖고 연애 중이라고 한다. 김국진의 인생사를 아는 사람들과 그동안 라스에서 반품남 기믹으로 본인도 은근히 씁쓸해하는 모습에 마음 아파했던 팬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중이며 두 사람의 행복을 응원하는 중.

 

'집밥 백선생 시즌2'에 출연하게 되었다. 요리실력은 그냥 없다고 보는게 맞을 정도. 팔순 노모가 "내가 너 이렇게 밥 해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얘기를 한 게 출연 계기라고. 그래도 방송에선 백주부가 가르쳐주는 레시피를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여담

 

경기대학교 출신인데, 김국진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던 전성기에 어느 프로그램에서 김국진의 출신교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때 김국진이 '경~대요.'라고 일부러 발음을 얼버무려 사회자가 '아 경희대요?'라고 묻자 긍정해버려 경기대 학생들에게 크게 외면을 받은 적이 있었다. 우유부단함의 결과지만 김국진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에피소드. 그래도 입학식이나 축제의 MC로 박슬기와 함께 종종 얼굴을 비춘다.

 

영문과 출신인데 영어에 능통하지는 않다. 전성기에는 김국진에게 영어를 잘한다고 얘기하면 김국진이 특유의 혀짧은 소리로 어설픈 짧은 영어 몇 마디를 하는 것도 하나의 준비된 개그였다. 데뷔 시절 감자골 4인방(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김수용)으로 인기를 얻은 몇년 뒤 김용만과 함께 미국 어학연수를 갔건만 영어는 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지진을 겪었을 뿐. 여담으로 당시에 밥과 고추장으로 생계를 이어나갈 정도로 궁핍했는데,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미국을 찾은 고정운, 황선홍 등이 놀러와서 넌지시 용돈을 줬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렇게 세상에 배신을 당하고 살아왔으면서도 장애인과 저소득층 가정에게 의류 2억2천 만원 어치를 기부했으며, 2007년에는 서울대 병원에 1억3천 만원 상당의 의류를 기부하는 등 상당한 대인배라 할 수 있다.

 

부모님이 독실한 천주교신자라 십일조를 했었는데 김국진의 최전성기 시절 1달 수익에 정확하게 10프로를 성당에 기부했다고 한다. 참고로 김국진의 최전성기에 김국진이 말한 바에 따르면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1억을 벌 수도 있었다' 라고 할 정도였다.

 

김국진, 박수홍 등과 함께 감자골 4인방이면서 연예계에서 세 손가락에 들만큼 그와 가장 친한 연예인이던 김용만은 김국진과 젊었을 때 같이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김국진의 사주가 "평생 돈이 얼마가 들어가고 나갈 지 모를 사주"라고 했다는 걸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김국진이 남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잘 잊어버린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부분은 본인이 돈을 빌렸던 것도 잘 잊었다는 점이라고 한다. 더 웃긴 일화는 감자골의 또 다른 멤버였던 김수용이 신인 시절 이를 알고 역이용해 김국진에게 "아 형~, 저번에 빌려준 거 왜 안 갚아?"라고 하면서 빌려주지도 않은 돈을 3번이나 받아봤다는 것이다. 김국진은 깜빡 속은 나머지 아무렇지도 않게 "어 잊어버렸구나. 미안~"이라고 하면서 김수용이 말할 때마다 계속 그 돈을 줬다고 한다. 물론 큰 돈이 아니었으니까 쉽게 속은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겠으나 정말 돈에 대해 신경을 안 쓰는 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심지어 평소에 옷을 사는데도 관심이 별로 없어서 하루는 겨울에 김수용과 만나서 얘기하다가 "아, 추워. 야 옷 사러가자."라고 하더니 겨울옷을 파는 가게에 가서 옷을 전혀 입어보지도 않고 태연하게 특정 옷을 가리키더니 "저거 미디움 사이즈로 주세요."하더니 그냥 받아서 입고 계산해버렸다고 한다. 또 그 자리에서 옆에 있던 김수용에게도 "야, 너도 하나 입을래?"라고 하면서 또 아무렇지 않게 옷을 사줬다고 한다.

 

김국진에 대해서도 한 가지 안 좋은 일화는 있다. 바로 이윤성과 결혼하기 전 사귀던 여자친구 지종은에게 갑자기 결별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이윤성과 결혼을 했다는 것. 이 때 지종은 측은 충격먹고 난리가 났고 온갖 이야기가 다 돌았다.

 

전성기 때의 인기에 비해서 연예대상(당시 코미디대상) 수상은 2번 밖에 없다. 김용만, 이경규, 김국진 이렇게 돌아가면서 받았다는 게 김국진의 기억이다. 대신 MBC 다큐멘터리 '21세기 대중문화 대장정'에 20세기를 빛낸 한국 코미디언 1위에도 올라 있을 정도로 영향력은 컸다.

 

과거에 김용만과 라디오를 진행한 적이 있다. 아침 시간대였는데 문제는 둘 다 아침잠이 많아서 툭하면 둘 중에 하나가 늦잠 자서 지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언제는 지각해서 자기 라디오를 들으며 운전하고 가고 있는데 둘 다 안 와서 라디오를 PD가 진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가톨릭 신자이고 세례명은 가브리엘임이 가톨릭과는 전혀 상관 없는 TV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서 밝혀졌다. 당시 출연자였던 정재형과 세례명이 똑같았던 걸 우연히 언급했던 것.

 

방송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중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 있는 걸로 보인다. 김국진이 고등학교 시절에 제 2외국어를 중국어로 공부를 하였고 2005년 경에 김용만과 같이 중국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 점, 공백기 기간에도 중국어 공부를 했다는 점에서 실력을 엿볼 수 있다. 예전에 f(x)가 라디오스타에 출연할 당시 빅토리아에게 중국어로 인사하거나 간간히 중국어를 하는 점, 효연이 라디오스타에 나와 중국어로 음식 주문을 할 때도 이해하던 모습, 차오루와 라스에서 대화할 때도 중국어가 말끝마다 나온 점을 보면 중국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데 무리가 없는 실력인 것으로 보인다. 불타는 청춘에서도 멤버들과 홍콩에 갔는데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데 큰 무리가 없는 중국어 실력을 보여주었다.

 

피에스타 '차오루'는 김국진을 처음 보았을 때 "안경 쓰고 공부 많이 하신 분 같다."며 방송국 국장님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몸은 마른 편이지만 생각보다 힘이 좋고 운동신경이 좋은 편인 듯하다. 남격 절대권력편에서 윤형빈과 레슬링을 했는데, 윤형빈은 프로필 상 181cm / 75kg, 김국진은 171cm / 58kg으로 20kg 가까이 차이가 남에도 허리 힘으로 윤형빈을 번쩍 들어 내동댕이쳤다.

 

과거 구준엽과 철봉 매달리기 대결에서 구준엽은 얼굴이 시뻘개져 떨어지고 난 후에도 생글생글 웃으며 철봉에 매달려 있기도 했다.

 

라디오스타 추신수 편에서는 마른 체격과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MC들 중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졌다.

 

축구도 굉장히 잘 한다고 한다. 학창시절 선출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축구선수들과 친분이 깊은 이유. 홍기훈의 증언으로는 30대 시절 연예인 축구 동호인끼리의 축구 경기에서 김국진 혼자 5점을 득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김국진이 강냉이 드립처럼 웃기려고 하는 부분이 많지만, 연예계의 파이터인 홍기훈이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표영호, 지석진, 김용만 등에게도 데뷔 초에 형이라고 못 불러주겠다고 선언하여 반말을 사용하는데에 반해 김국진에게만은 매우 깍듯하게 모시는 선배 형님이라고 하니 김국진이 의외로 어느 정도의 깡과 운동 능력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전에서 맹활약한 "독수리" 최용수와 동네 조기축구회에서 공차는 모습이 TV에 방영되기도 했다. 당시 핫한 두 사람의 만남이었기 때문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김국진이 공을 몰고 나오며 큰소리로 "최용수 나와!" 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경규가 사석에서 유일하게 어려워하는 후배라고 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이경규가 회식을 한다고 모두 가자고 할 때 후배 중에 유일하게 거절하고 집에 가도 이경규가 한 마디도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선후배 간의 강압적인 악습을 굉장히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또 다른 일화로는 커피 심부름하러 온 개그맨 후배 김숙이 뒤에 김국진이 있던 것을 모르고 오랫동안 자판기를 혼자 사용하자 그저 뒤에서 아무 말 없이 자기 순서를 계속해서 기다렸다고 한다. 뒤늦게 자기 뒤에 김국진 대선배님이 있는 걸 발견하고 당황한 김숙이 미리 뽑은 커피를 건네자 "음~ 나는 후배들에게 커피 심부름 안 시켜"하며 계속 기다렸다고... 결국 자기 커피를 직접 뽑아서 갔다고 한다.

이외에도 김숙이 신인 시절 동기들과 함께 김국진과 같은 지방 행사를 갔던 시절 김국진은 김숙에게 "돈 받고 행사 오느냐"고 물었고, 김숙이 자기들은 신인이라서 무대 경험을 쌓으라해서 온 거라며 행사비를 못 받았다고 말하자 "그런 게 어디 있어"라며 "개그맨의 자긍심을 가져라. 똑같이 나눠 써"라며 자신의 행사비 전부를 후배들에게 주었다고 말했다.

 

라디오스타 '괜히 바꿨어 특집'에 출연한 나나가 봉춤을 선보이자 직접 해보기도 했다. 다리 힘만 가지고 봉에 매달리기를 시전할 정도. 이 후 2016년엔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김동현에게 기습을 해서 항복을 받아낸다.

 

커피를 엄청 좋아해서 하루에 인스턴트 커피를 30~40잔씩 마신 적이 있다고. 매니저가 건강이 걱정되어 하루에 3잔만 마시라고 제한을 뒀는데 참을 수 없었는지 당시 같이 시트콤을 찍던 문세윤에게 몰래 커피를 가져와달라고 부탁해서 3잔 넘게 마셨다고 한다.

 

[ 출처 : 나무위키(namu.wik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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