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우리나라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최순실 씨가 1위, 정 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
- 박관천 前 경정

 

"도대체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누구이관대, 나라를 불신과 불통의 아수라장이 되게 해놓고 정작 당사자는 말 한마디 없는가? 아니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인가?"
- 김용태 새누리당 국회의원

 

2016년 10월 이후 국내 포털 실시간 검색, 해시태그, 시국선언, 여론조사, 촛불집회 등 전국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하야 요구로 뒤덮게 만들며 박근혜 정부 최대의 위기를 몰고 오고 있는 최악의 국기 문란 사건 최순실 게이트의 당사자

 

최순실은 부친인 사이비교주 최태민의 대를 이어 박근혜 대통령과의 혈육 이상의 친분관계를 이용하여 축재를 하고 대통령을 정신적으로 통제하여 국정에 개입하고 농단해 민주국가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지목받고 있는 사람으로 2016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자발적으로(?) 수 백 억원의 돈을 걷어 만든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의 설립에 깊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16년 9월 처음 언론에 의혹이 터져나온 후 10월까지 약 1달 만에 이 사람이 만들어낸 각종 의혹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최경희 총장이 사임하고 대통령이 직접 엄정 수사를 언급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 교육, 스포츠, 연예 분야에 이르기까지 이런 막대한 의혹을 낳은 장본인이거늘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탓에 얼굴이 제대로 드러난 사진조차 구하기 힘들었고 인터뷰를 시도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나마 의혹이 터진지 한참 뒤인 10월 27일에야 최초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 생애

 

1956년 병신년에 최태민과 임선이 사이에서 최태민의 5녀로 태어났다(즉, 박근혜 대통령보다 4살 연하). 본명은 최순실이지만 2014년 2월에 최서원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최순실의 부친 최태민은 1975 ~ 1994년에 육영수의 혼령과 통한다고 주장하면서 무려 20년 동안이나 박근혜와 매우 가깝게 지내왔던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예지몽을 꾸는 능력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는데 물론 믿거나 말거나이다.

 

최태민은 6명의 아내로부터 9명의 자녀를 뒀다. 최태민은 그 중 다섯째인 최순실을 특히 총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호의 사실은>은 ‘태자마마 최태민이 최순실을 총애한 이유’에 대해 “아버지의 현몽(現夢), 꿈을 통한 예지력을 이어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최순실이 박근혜에게 꿈 이야기 하는 장면을 종종 목격했다”고 증언한 사람들도 있다.

 

1975년 단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청강생으로 등록했다. 학부 수업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하며 수료증을 받고 졸업 후 같은 과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그러나 수료는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학위를 취득한 게 아니라면 고졸인 셈이다. 일설에 의하면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 위치한 퍼시픽스테이츠대학교에서 4년 만에 석사학위를, 2년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 하며 이를 기반으로 유치원 원장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취재 결과 미국에서 유아교육 관련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 하는 기간 동안 한국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참고로 미국 퍼시픽스테이츠대학교는 경영학 관련 학위과정만 있는 대학교로 박사학위도 경영학박사 (Doctorate of Business Administration) 과정만 있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학위 위조 의혹을 받고 있다.

 

 

 

 

1979년 6월 10일, 박근혜 새마음 봉사단 총재가 축사를 한 '제1회 새마음 제전'에서 당시 대학원생으로 이 날 행사를 주최한 ‘새마음 대학생 총 연합회’의 회장이었던 최순실이 그 날 ’새마음 제전’의 개회 선언을 한 일이 당시 언론에 보도되었다. 하지만 그 때에는 그녀가 최태민의 딸이라는 사실까지 보도되지는 않았다. 여기서 당시 박근혜와 경호원의 제지도 없이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위의 동영상을 보면, 마치 연예인처럼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손을 흔드는 박근혜 총재의 옆을 최순실이 그림자처럼 수행하고 있다. 당시 박근혜 총재의 나이는 불과 27세, 최순실의 나이는 23세였다.

 

1979년 박정희가 피살되고 이듬해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박근혜가 인생 최대의 시련기를 보낼 때도 최순실은 충실하게 박근혜의 옆을 지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박근혜는 1984년 6월 좋은 환경을 버리고 성북동 집을 판 후, 삼성동에 있던 최태민 집 앞으로 이사했다. 박근혜와 최태민의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최순실의 집이 있었으며 이 주변은 최태민, 최순실, 박근혜의 부동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문건에 의하면, 최순실은 김영호(최순실보다 연하)와 1982년 결혼해서 1983년 김○대를 낳았고 1985년 이혼했다고 한다. 아들에 대한 친권은 김영호가 갖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같은 잡지의 취재에 의하면 공교롭게도 김○대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청와대 총무구매팀에서 근무했다고. 문제는 김○대가 공무원도 아니고 정치권 출신도 아니고 일반 직장 경력이 화려하지도 않은 사람이었다는 것.

 

 

 

 

그러다가 1986년 3월에는 최순실이 육영재단 부설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그 무렵 최태민과 최순실이 육영재단 사업에 개입해 전횡을 일삼았고 이로 인해 140여 명의 육영재단 직원들은 최태민의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직당했다. 당시 최태민의 사촌인 김창완이 어린이회관 관장에 임명됐고 육영재단 이사진에 영남투자금융 비리의 핵심인 김정욱이 임명됐으며 새마음병원 사무국장, 명덕재단 사무국장 등에도 최태민의 친인척 및 하수인이 임명되었다. 이로 인해 1990년 육영재단 분규 때 직원들이 최태민과 최순실의 전횡을 비판하는 플래카드를 걸고 데모를 한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2007년 6월 17일 당시 한나라당 당원이었던 김해호는 이렇게 주장했다.

 

"최태민의 로열패밀리는 육영재단을 재산증식의 장으로 이용했고 박 전 대표는 육영재단 이사장이었지만 아무런 실권도 행사하지 못하고 최태민과 그의 딸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측근에 의해 작은 재단 하나도 소신껏 꾸려가지 못하고 농락당해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된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 지도자가 되고 험난한 21세기 글로벌시대를 넘어갈 수 있겠나?"

1994년 아버지 최태민이 사망하였을 때 아버지에게서 수 백 억원의 재산을 물려받았다는 소문이 있다. 실제로 최순실의 자매들은 최태민에게서 거의 그 정도의 재산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참고로 최태민과 최순실은 박근혜를 만나기 전까지 아무 자산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박근혜를 만나기 이전에는 최태민과 그의 가족들은 단칸방을 전전하며 살만큼 가난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근혜를 만난 이후 최태민은 순식간에 수 천 억원대 준재벌급 부동산 자산가로 변신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최태민 사망 이후 최순실이 최태민의 후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사인 주진우 기자는 2016년 10월 14일자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최태민은 교주였는데 최순실이 현몽을 물려받았다고 해서 최태민의 후계자가 되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중반에는 유치원(압구정동 초이유치원)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최순실 명의의 상당한 재산이 박근혜의 차명 재산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해 최순실은 유치원 사업이 잘 되어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고 해명한 바 있는데 실제로도 사업이 잘 되기는 하였다고 한다.

 

여성잡지 <우먼센스> 1994년 8월호에 가명으로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다. 인터뷰 내용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는 미상이지만(최태민에 대한 의혹을 부인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어쨌든 본인 말로는 박근혜와 처음 알게 된 것은 1976년경이었다고 한다.

 

1995년 정윤회와 재혼했다. 그리고 1996년, 딸 정유라를 낳았다는 것이 공식 기록이다.

 

1998년 오랜 은둔의 시기를 마친 박근혜가 정치계에 입문했을 때에도 박근혜의 곁에 그림자로서 자리하고 있었다. 남편 정윤회를 박근혜의 비서실장으로 밀어넣은 것이다. 2008년 이후 박근혜 정부의 국정을 좌지우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른바 ‘문고리 3인방’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 역시 그때 정윤회에 의해 발탁된 인물들이었다.

 

 

 

 

2006년에 박근혜가 서울시장 선거 유세 현장에서 피습을 당했을 때 박근혜를 간호했다고 한다. 2007년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한나라당 경선에서도 박근혜 캠프를 비선에서 지휘한 것은 최순실의 남편인 정윤회였다는 얘기 역시 떠돌아 다녔다.

 

대략 2006년 경에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고영태를 만난 것으로 추측된다. 고영태는 전직 펜싱 국가대표 선수로 한때는 호스트 생활을 한 적도 있었고 마약사범으로 형벌을 받은 적도 있는 자였다. 20세 연하인 고영태와 서로 ‘반말’을 하는 사이로서 매우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고영태와 가까워진 후, 고영태가 만든 가방 브랜드 빌로밀로를 박근혜에게 소개하였는지 박근혜는 2013년 초 당선인 신분으로 빌로밀로 가방을 자주 들고 다녔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선거운동원으로 등록하지도 않고 사실상 비선 선거캠프의 본부장 노릇을 한 것으로 보인다. jtbc의 보도에 따르면, 후에 청와대 행정관이 되는 김한수의 태블릿에 담긴 박근혜의 대선 유세 연설문들이 최순실 또는 정유라에 의해 최종 수정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 이 밖에 대선 TV토론이나 홍보영상, 신문광고까지 모두 최순실에게 전달됐고 이 후 수정한 흔적도 여러 번 나타난다. 법적 논란도 예상되는 부분. 어쨌든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에 큰 공로를 세웠다.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한나라당의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도록 한 것도 최순실이라고 한다. 새누리를 한자어로 바꾸면 신천지인데 신천지는 최태민이 만든 영세교의 분파로서 최태민의 제자가 만든 사이비종교의 이름이라는 것. 우연히도 미르재단의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K를 합치면 미륵인데 미륵은 최태민의 자칭이라고 한다. 물론 이런 얘기는 어디까지나 풍문이므로 믿거나 말거나...

 

박근혜의 당선 이후인 2014년에 정윤회와 이혼하였다. 개명 직후에 최순실이 정윤회를 상대로 가사조정신청을 했고 조정이 성립되어 이혼했다고 하며 신청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매우 특이한 것은 "결혼 기간 중에 있었던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않기로 하고 이혼한 뒤 서로 비난하지 않는다"라는 조정 조항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 까닭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윤회는 황당하게도 "남들도 이혼할 때는 다 그렇게 한다고 들었다."라는 해명(?)을 한 바 있다. 위장 이혼 의혹을 제기하는 이도 있었으나 주진우 기자에 의하면 정윤회와 사이가 나빴던 것은 사실이고 딸도 부친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다고 한다.(팟캐스트 <김용민 브리핑>에서 주진우 기자가 한 말에 따르면, 최순실과 정윤회는 ‘프라이팬과 식칼을 들고 싸울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2014년 2월 조응천 청와대 비서관이 최순실 관련 내사를 벌이기 시작하면서 잠시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4년 4월 15일 저녁에 조응천이 청와대의 누군가로부터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통보를 받는 것으로 최순실 관련 내사는 종결되었다. 바로 다음 날인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당일 7시간 동안 박근혜의 행적이 묘연하여 당시에 여러 가지 의문을 자아냈다.

 

 

딸인 정유라와 찍은 사진

 

 

2014년 여름에는 딸 정유라가 고등학생 신분으로 아이를 갖는 등 파란이 많았다. 어쨌든 정유라를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승마 단체전 금메달리스트로 만들었고 이화여자대학교 체육학과에도 입학시키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2015년 여름에 미르재단을 출범시켰다. 미르재단 이사장으로는 자기 동네 단골 마사지 업소 사장인 정동춘을 선임하였다. 당시 고영태와의 관계는 아예 사업을 같이 하는 관계로까지 발전하였다. 최순실의 개명 후 이름인 최서원과 고영태의 이름 한 글자씩을 따서 ‘고.원.기획’이라는 회사를 만들기도 했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증언에 따르면, 최순실의 진짜 핵심 측근은 고영태라고 한다.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시가 30억 원짜리 117평 주상복합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해당 주상복합 아파트 지하주차장에는 최순실 소유의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차량과 벤츠 S클래스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2016년 10월 31일, 서울 중앙지검 로비에 72만원 정도 하는 명품인 프라다 신발 한 쪽을 남겨둔 채 저녁식사로는 인근 식당에서 배달한 곰탕을 거의 다 먹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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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나무위키(namu.wik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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